1854년, 아메리카 인디언이었던 수콰미쉬 족과 두와미쉬 족 원주민들을
인디언 보호 구역으로 강제로 이주시키기 위한 협상을 위해
어느 백인 관리가 시애틀의 퓨젓 사운드에 도착했을 때,
시애틀 추장이 행한 연설문을 류시화 시인의 책(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에서 다시 읽으면서
우선 추장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의미를 나름 다시 찾아 보고
이는' 야만스러운 종족의 우두머리'라는 뜻임을 알고 솔직히 놀랐습니다.

저는 온라인 전자사전인 myQuickFind 를 주로 사용하는데
그 사전에는 그렇게 소개되어 있었습니다.
사실 사전상의 뜻에도 피지배 삶과 그로 인한 슬픈 역사가 깃든 듯 싶어 조금은 씁쓸했었습니다.

이 책은 아메리카 인디언의 삶과 문화, 그리고 그들의 슬픈 역사를 담은 인디언 추장들의 연설 모음집인데.
당시 백인들의 위선에 가득한 삶과 공허한 정신세계를 자신들의 사상으로 드러낸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대지의 일부분이며
들꽃은 우리의 누이이고,
순록과 말과 독수리는 우리의 형제다ㅣ.
강의 물결과 초원에 핀 꽃들의 수액, 조랑말의 땀과 인간의 땀은 모두 하나다.
그 모두가 같은 부족, 우리의 부족이다."
저는 이 문단에서 엄청 충격을 받았었는데
이는 해방 후의 숭미(또는 서양)사상에 바탕을 둔 철학이나 사상과의 깊이가 남달랐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공기를 사고판단 말인가',가 실은 그 첫장의 소제목인데,
얼굴이 흰 사람(백인)의 대표가 얼굴 붉은 사람(인디언)의 땅을 협상으로 가장한 무력으로 차지하고  싶은 마음을 지레 읽고
그 협상 테이블에서 자신들이 알아낸 우주와 지구의 자연과 생명의 역사를 풀어낸 시애틀 추장의 명연설입니다.

'틀림'과 '다름'을 얘기하는 사람들의 진정성 가득한 이해의 대화에도 불구하고
저는 제 삶 속에서, 분명히 틀린 것을 다름의 애매모호한 완화된 영역으로 희석시키려는 동태를 보았었습니다.
그로인한 갈등이 제 의식과 무의식 한 편에 자리하고 있는 것을 저는 압니다.
이는 부정과 비판의 영역에서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데,
지난 모임에서 저를 부정적 성향을 가진 사람으로 평가한 어느 친구의 얘기에
제 나름의 보호본능에 충실한 방어기제가 작동했을 수도 있었겠습니다.
삶의 여건이 달라질 때마다 미묘하게 달라질 수 있는 것이 우리네 삶이므로
저는 이제는 그리 이해하기로 했습니다.

그 책의 첫장을 읽으면서
이는 존재의 기원과 풀이방식이 다른 종교적 관점의 차이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떠올랐는데
사실이지 저는 책을 읽으면서 바로 잊어버리는 지경에 다다른 사람입니다.
책을 읽어도 그 내용이 제 기억 속에 남아 있지 않을 때가 많은데
다행히 그 의미는 저만이 해독할 수 있는 스틸 사진과 같은 이미지로 남아 있을 때가 많습니다.
이를 다시 의식속에서 현상하고 인화한다는 것이 제 힘으로는 무척 벅찰 때가 많은데
그나마 시간이 걸리더라도 제 의식과 무의식 세계의 한켠에 각인된 이미지를 재해석하는 시간이
즐겁습니다.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 하는 질문에 이제는 답을 줄 수도 있는데
그것은 '나는 나이기 때문이다.'입니다.


제 기억력이 현저하게 저하되면서
현실 세계의 포스트 잇과 같은 기능이 제게는 절실하게 필요했는데
그러한 프로그램을 찾다보니 아주 좋은 프로그램이 눈에 띄였습니다.
개인 일정관리 프로그램(PIM: PersonaI Infomation Manager)인데
그 프로그램의 다양한 기능 가운데는 윈도우의 메모장 보다 뛰어난 기능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자동 저장 기능입니다.
세세한 일정관리 기능을 저는 사용할 일이 거의 없는데 
제가 메모장을 사용하는 날짜에 자동으로 저장되는 그 기능만큼은 정말 감탄하게 됩니다.

류시화 시인의 번역물과 저작물을 읽다 보면 그 분의 순수한 영혼을 나름 느끼게 되는데
그 분의 저작물 가운데 제가 미쳐 읽지 못한 책들 모두를 주문하여 어제 받았습니다
그러한 분이 있음으로 저는 간혹 살아 있는 고마움을 느끼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