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희주 친구가 춘천 102보충대에 입소(入所)를 했겠군요.

고등학교 때부터 간혹 보아왔던 녀석은 지난주 어느 날,
군대에 가기 전에 제 어머니와 제게 인사를 드리겠다며 수동에 들어왔었습니다.

그 아이가,
수도권 어느 대학에 진학한 후, 지 적성과는 맞지 않아 학과 공부에 흥미를 잃을 즈음
지 어머니의 병고(病故) 까지 겹쳐 휴학을 하고는 
어쩔 수 없이 가장의 책무를 떠맡아 어느 백화점에서 근무한 것까지는 자연스레 알 수 있었는데,
이는 간혹 희주를 통해 알게 된 그 아이와 가족의 근황일 수도 있겠습니다.
근데 그 근황은 제 나름으로 그 이상을 추론할 때 사용하는 붙박이 배경이 되기도 했습니다.

제가 복무했던 30년 전의 시절과는 확연히 달라지게 했을--그렇기를 소망합니다.--세월의 흐름을 무시할 수 없어
자기 선배들과 대화를 자주 가졌는지를 확인하는 정도에서 말을 아끼며
그저 집 냉장고 안에 있는 재료로 따뜻한 밥 두끼를 해먹인 것이
입소를 앞두고 찾아온 아이에게 제가 해준  전부였습니다.

그 아이의 가족이 희주와 함께 동해안으로 1박 2일의 여행을 하고 수동에 들렀을 때가 
아마 희주가 고등학교 1학년 때였을 겁니다.

제 아버님이 살아계셨을 때에는 그나마
한달에 한 번 정도는 부모님과 어린 희주를 데리고
서울에서 가까운 온천 등지를 돌며 여행을 다니곤 했었는데
아버님이 돌아가신 이후로는, 어머니와 저 그리고 희주만 달랑 움직이는 일이 극히 적어졌습니다.
여행지 음식점에서 식사할 때 제 스스로 주위의 시선을 불편해했기 때문이었는데
그랬기 때문에 희주가 친구나 친구 가족들과 하는 여행을 부추기는 편입니다.
아마 그래서 희주가 가족과 함께 했던 여행이라는 것이 대개는
제 누이 가족들 모두와 함께 떠나는 여행에 국한될 수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저 역시,
고등학교 때부터는 본격적으로 배낭을 매고 홀로 여행을 다닌 경험이 많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근데 이상하지요? 그 여행지는 아버지를 따라 갔던 곳일 때가 많았습니다.--
4년여 전의 그날, 그 가족을 반갑게 맞이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러한 제 마음의 고마움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었을 터인데
조금은 당황스럽던 마음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혼한 어머니의 남자 친구를 아저씨라 부르며 흔쾌히 받아들이는 남매의 모습이 의외였었는데
그렇다고 저도 그 분을 정기 아빠인 듯 싶게 얘기하는 것은 정말 쉽지 않았었습니다.
더우기 엄마 보다 몇 살 나이가 어린 사정을 알았을 때는 더욱 그러했었습니다.
보기 전에는 제 또래일 것으로 짐작했을 뿐이었는데
직접 보니 너무 젊어 보여 제가 나이를 물어 보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제가 남의 눈을 지나치게 의식했듯이
저 역시 그 눈의 잣대로 남을 보았던 것은 아닐까 싶은데,--사실이 그렇기도 하지만--
참 부질없는 마음을 갖고 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런 속 좁은 마음으로는 희주의 아빠 역할만으로도 벅찼을 테니
그 녀석에게 여느 아저씨도 해줄 수 있는 말들조차 못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 남자는 군대를 다녀와야 비로서 남자가 된다.
휴가 나오면 그때 들르거라."

데크에서 건투를 비는 악수를 나누며
지 삶을 본격적으로 헤쳐나갈 초입에 들어선 그 아이에게
지혜와 행운과 건강이 함께 하기를 빌었습니다.

편부나 편모 슬하의 아이들을 보면 왠지 그냥 마음이 아립니다.